글렌알라키 : 50년의 무명 끝에 찾아온 전성기

발베니나 맥캘란 같은 이름들이 위스키 시장을 꽉 잡고 있을 때, 혜성처럼 등장해서 판을 흔들어버린 증류소가 하나 있어요. 바로 글렌알라키입니다. 사실 ‘혜성처럼 등장했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이 증류소는 1960년대부터 조용히 위스키를 만들어왔거든요. 다만 그동안은 자기 이름을 내걸지 못하고 유명 블렌디드 위스키의 ‘조연’으로만 살아왔을 뿐이죠.

근데 말이에요, 위스키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한 남자가 이 이름 없는 증류소를 인수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오픈런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셰리 캐스크 위스키를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주인공이 됐죠. 50년이라는 긴 무명 시절을 견디고 드디어 화려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글렌알라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풀어보겠습니다.

글렌알라키 제품 라인업

(10년 CS 배치 11, 12년, 15년, 15년 한국 한정판)

한눈에 보는 GlenAllachie / 글렌알라키

항목정보
종류스카치 싱글몰트
지역Speyside (Aberlour) / 스페이사이드(아벨라워)
설립1967년
소유글렌알라키 디스틸러스 (2017~ 현재)
연간 생산량약 4,000,000 리터
증류기워시 스틸 2기 + 스피릿 스틸 2기
특징빌리 워커의 인수, 셰리 캐스크 특화, 논칠필터, 무색소
대표 제품12 Year Old, 15 Year Old, 10 Year Old Cask Strength

기원과 배경

글렌알라키라는 이름은 게일어로 ‘바위 언덕의 계곡(Valley of the Rocks)’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스페이사이드의 아름다운 마을 아벨라워 외곽, 벤린스 산 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죠. 이 증류소의 시작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맥킨레이 맥퍼슨(Mackinlay McPherson)이라는 회사가 설립했는데, 이 시기는 스카치 위스키 산업이 엄청나게 팽창하던 골든에이지였어요.

재미있는 사실은 글렌알라키가 처음부터 철저하게 ‘효율성’을 따져서 설계된 증류소였다는 점이에요. 전설적인 증류소 건축가 델메 에반스(Delmé-Evans)가 설계했는데, 중력을 이용해 원액이 이동하게 만드는 등 당시로서는 아주 현대적인 설비를 갖췄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뛰어난 시설은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어요. ‘치바스 리갈’이나 ‘패스포트’ 같은 유명 블렌디드 위스키에 들어갈 원액을 공급하는 공장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위스키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글렌알라키?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정도의 인지도에 머물렀죠. 1989년에는 캠벨 디스틸러리(페르노리카의 전신)가 인수하면서 생산량은 늘었지만, 여전히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낼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듯했어요.

하지만 2017년, 운명을 바꾼 사건이 일어납니다. 벤리악과 글렌드로낙을 부활시킨 장본인, 빌리 워커(Billy Walker)가 이끄는 컨소시엄이 글렌알라키를 인수한 것이죠. 빌리 워커는 창고에 잠들어 있던 수만 개의 캐스크를 하나하나 직접 테이스팅하며 원액의 잠재력을 발견해냈습니다. “이 정도 퀄리티의 원액이 왜 지금까지 숨겨져 있었지?”라는 의구심과 함께, 그는 단 1년 만에 완전히 리브랜딩된 코어 라인업을 세상에 내놓으며 화려한 부활을 선포했습니다.

생산 방식과 특징

글렌알라키가 단기간에 셰리 위스키의 강자로 떠오른 데는 단순히 ‘마케팅’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이들만의 고집스러운 생산 방식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죠. 솔직히 말해서, 빌리 워커가 온 뒤로 글렌알라키의 정체성은 180도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해요.

첫 번째 특징은 엄청나게 긴 발효 시간입니다. 일반적으로 위스키 증류소들은 50~60시간 정도 발효를 시키는데, 글렌알라키는 이를 최대 160시간까지 늘렸어요. 발효 시간이 길어지면 효모가 더 많은 에스테르를 만들어내는데, 이게 바로 글렌알라키 특유의 풍부한 과일 향과 복합적인 풍미의 비결이 됩니다. 원액 자체가 묵직하고 힘이 있으니 진한 셰리 캐스크를 만나도 맛이 묻히지 않고 균형을 잡는 거예요.

두 번째는 독보적인 캐스크 관리 정책입니다. 빌리 워커는 위스키의 맛에서 캐스크가 차지하는 비중을 70% 이상으로 봐요. 그래서 원가를 아끼지 않고 최고급 캐스크를 공수해옵니다. 특히 ‘셰리 폭탄’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페드로 히메네즈(PX)와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를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하죠. 단순히 담가두는 게 아니라, 숙성 중간에 캐스크를 교체하는 ‘피니싱’ 작업도 아주 정교하게 수행합니다.

세 번째는 자연스러움에 대한 집착이에요. 글렌알라키의 모든 코어 라인업은 인공 색소를 넣지 않고(Natural Colour), 냉각 여과 과정(Non Chill-Filtered)을 거치지 않습니다. 위스키 본연의 지방산과 향기 성분을 그대로 보존해서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감(Mouthfeel)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죠. 병을 열었을 때 풍기는 진한 색감과 묵직한 바디감은 여기서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증류기 구조도 한몫합니다. 글렌알라키의 증류기는 목이 꽤 높은 편인데, 덕분에 구리와의 접촉이 많아져서 불순물은 걸러지고 깨끗하면서도 특징 있는 원액이 추출돼요. 이런 기초 체력이 튼튼한 원액이 빌리 워커의 마법 같은 배합 기술을 만나 지금의 명성을 만든 셈입니다.

빌리 워커(Billy Walker)와 글렌알라키

글렌알라키를 이야기하면서 빌리 워커를 빼놓는 건, 팥 없는 찐빵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아요. 그는 화학자 출신으로 위스키 업계에서 50년 넘게 경력을 쌓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입니다. 이미 벤리악(BenRiach), 글렌드로낙(GlenDronach), 글렌글라사(Glenglassaugh)를 차례로 인수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낸 뒤 매각한 이력이 있죠.

사람들은 그가 은퇴할 줄 알았지만, 그는 70세가 넘은 나이에 글렌알라키를 인수하며 또 다른 도전에 나섰습니다. 빌리 워커의 강점은 ‘원액의 잠재력을 읽는 눈’이에요. 그는 매주 수백 개의 샘플을 직접 테이스팅하며 어떤 캐스크가 정점에 도달했는지, 어떤 원액끼리 섞었을 때 가장 맛있는지를 직관적으로 판단합니다.

그의 철학은 명확합니다. “위스키는 기다림의 미학이지만, 그 기다림을 가치 있게 만드는 건 관리자의 개입이다.” 단순히 나무통에 넣어두고 방치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상태를 체크하고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캐스크를 옮기는 결단력이 지금의 글렌알라키를 만든 원동력입니다. 그는 여전히 증류소 곳곳을 누비며 직접 블렌딩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런 열정이 위스키 맛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습니다.

Glenallachie 13-year-old

(이제는 구형이 되버린 이전 글렌알라키 디자인, 제품은 13년 Oloroso Wood Finish )

핵심 라인업

글렌알라키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코어 레인지를 먼저 살펴보는 게 정석입니다. 특히 빌리 워커가 공들여 설계한 배치 시리즈들은 위스키 마니아들 사이에서 수집 대상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아요.

글렌알라키 12년 (GlenAllachie 12 Year Old)

글렌알라키의 시작이자 얼굴인 제품입니다. 셰리 캐스크 위스키 입문자들에게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하죠. 단순히 셰리 캐스크만 쓴 게 아니라, 올로로소(Oloroso)와 페드로 히메네즈(PX) 셰리 캐스크, 그리고 버진 오크 캐스크를 적절히 섞어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셰리의 달콤함과 오크의 스파이시함이 아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요. 46%의 도수는 물을 타지 않아도 충분한 타격감을 주면서도 향의 직관성을 잘 유지합니다.

구분노트
Nose꿀, 건포도, 모카, 버터스카치, 구운 아몬드
Palate다크 초콜릿, 시나몬, 건자두, 오렌지 껍질, 당밀
Finish길게 이어지는 달콤함, 약간의 육두구, 따뜻한 오크

Whiskybase 평점: 84점 내외 (상세보기)

글렌알라키 15년 (GlenAllachie 15 Year Old)

많은 팬이 “글렌알라키의 진가는 15년부터”라고 말합니다. 12년보다 훨씬 더 진하고 묵직한 셰리의 풍미를 자랑하죠. 100% 셰리 캐스크 숙성 원액을 사용해 색깔부터가 간장처럼 진한 호박색을 띱니다. PX와 올로로소 셰리 펀천(Puncheon) 및 호그스헤드(Hogshead)에서 숙성된 원액들이 만나 폭발적인 단맛과 복합적인 풍미를 선사합니다. 셰리 폭탄(Sherry Bomb) 스타일을 선호한다면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예요.

구분노트
Nose진한 셰리 향, 무화과, 가죽, 정향, 설탕에 절인 과일
Palate끈적한 시럽 느낌, 블랙베리, 갓 구운 빵, 에스프레소
Finish압도적인 지속력, 다크 셰리, 약간의 쌉싸름한 카카오

Whiskybase 평점: 87점 내외 (상세보기)

글렌알라키 18년 (GlenAllachie 18 Year Old)

코어 레인지 중 가장 우아하고 정돈된 맛을 보여주는 고숙성 제품입니다. 단순히 진하기만 한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나무와 상호작용하며 다듬어진 세련미가 돋보이죠. 생산량이 많지 않아 매년 소량씩만 배치 형태로 출시됩니다. 12년이나 15년이 젊은 패기로 셰리의 맛을 밀어붙인다면, 18년은 “진정한 셰리 위스키란 이런 것이다”라고 조용히 읊조리는 듯한 깊이감이 매력입니다.

구분노트
Nose잘 익은 체리, 바닐라 빈, 가죽 가방, 은은한 담배 향
Palate실크 같은 부드러움, 자두 잼, 헤이즐넛, 잘 구운 설탕
Finish길고 부드러운 여운, 오크의 탄닌, 말린 과일의 단맛

Whiskybase 평점: 88점 내외 (상세보기)

글렌알라키 10년 CS (GlenAllachie 10 Year Old Cask Strength)

글렌알라키의 명성을 전 세계에 알린 일등 공신입니다. 물을 타지 않은 원액 그대로를 병입해 도수가 보통 50% 중후반을 넘나들죠. 매 배치마다 캐스크 조합이 조금씩 달라져서 배치끼리 비교하며 마시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특히 배치 4번이 세계 위스키 어워드에서 대상을 받으며 몸값이 치솟기도 했어요. 강렬한 타격감과 원액의 생생한 에너지를 느끼고 싶을 때 최고의 선택입니다.

구분노트
Nose강렬한 향신료, 구운 사과, 다크 셰리, 꿀에 절인 호두
Palate입안을 꽉 채우는 질감, 꿀, 베리류의 산미, 시나몬 가루
Finish매우 길고 뜨거움, 초콜릿 무스, 오렌지 제스트

Whiskybase 평점: 87~89점 (배치별 상이) (배치 리스트 확인)

직접 경험한 글렌알라키: 12년, 15년 그리고 10CS 배치 11&12

개인적으로 글렌알라키를 참 좋아해서 여러 제품을 마셔봤는데요, 제가 경험한 이들의 차이를 솔직하게 말씀드려 볼게요.

우선 12년은 가성비와 밸런스가 정말 훌륭해요. 사실 처음 이 위스키를 접했을 때 놀랐던 건 ‘색깔’이었어요. 12년 숙성치고는 굉장히 진한데, 이게 다 무색소라는 게 믿기지 않더라고요. 마셔보면 처음엔 꿀 같은 달콤함이 확 오다가 뒤쪽에서 버진 오크 특유의 스파이시함이 톡 쏴줍니다. 데일리로 마시기에 이만한 셰리 위스키가 있을까 싶어요.

15년은 완전히 다른 체급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15년은 ‘셰리 덕후를 위한 헌사’ 같아요. 12년보다 훨씬 끈적하고 묵직합니다. 입안에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오일리한 질감이 일품이죠. 다크 초콜릿이나 에스프레소 같은 쌉싸름한 풍미가 단맛과 섞여서 굉장히 고급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솔직히 저는 12년보다는 15년을 훨씬 선호하는 편이에요.

가장 흥미로운 건 10CS 배치 11번과 12번의 비교였어요.

배치 11번은 전형적인 글렌알라키 CS의 힘을 보여줍니다. 59.4%라는 고도수답게 혀를 때리는 타격감이 대단한데, 그 안에 숨겨진 레드 베리류의 상큼함이 셰리의 무거움을 잘 잡아주더라고요. 반면 최근에 경험한 배치 12번은 59.7%로 도수는 거의 같지만, 밸런스는 더 좋아진 느낌이었어요. 11번이 “나 CS야!” 하고 소리치는 느낌이라면, 12번은 좀 더 조밀하게 짜인 풍미가 층층이 느껴지는 기분이랄까요? 11번은 묵직함과 모카 느낌이 도드라졌다면, 12번은 셰리 캐스크의 영향력이 좀 더 우아하게 표현된 느낌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좀 더 자극적인 11번이 좋았지만, 완성도는 12번이 더 높다는 생각도 드네요.

입문자에게

글렌알라키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해요. “나는 연한 위스키보다 진하고 묵직한 맛이 좋다”, “달콤한 건과일과 초콜릿 풍미를 사랑한다”, “도수가 어느 정도 있어서 타격감이 느껴지는 게 좋다” 하시는 분들이라면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습니다.

첫 병으로는 역시 12년을 추천합니다. 대략 10만원 초반대에서 구할 수 있는 위스키 중 이만큼 존재감이 확실한 친구도 드물거든요. 하지만 만약 예산이 조금 더 허락된다면, 저는 과감하게 15년으로 시작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글렌알라키가 추구하는 ‘셰리의 정점’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죠.

반대로 피트 향(연기 냄새)을 좋아하거나, 아주 가볍고 산뜻한 스타일의 위스키를 찾는 분들에게는 글렌알라키가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요. 워낙 개성이 강하고 진해서 한두 잔만 마셔도 혀가 금방 피로해질 수 있거든요. 하지만 셰리 위스키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아마 한동안은 글렌알라키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 힘드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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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정보 제공 및 개인적 경험 공유를 목적으로 하며,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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